별이는 새벽 골목의 담장 위를 걷고 있었어. 두 시 반 — 발밑까지 조용한 시간인데, 어느 창에서 새어 나온 파란 빛이 담장 아래를 깜빡깜빡 물들이고 있었어. 휴대폰 불빛이야. 별이는 별꼬리를 발끝에 감고 담장에 앉아 잠깐 지켜봤지.
그 사람은 사진첩을 열고 있었어. 엄지로 화면을 쓸어 올렸다가, 한 장에서 멈췄다가, 다시 내렸다가. 프로필을 열어봤다가 그냥 닫고. 대화방은 여전히 맨 위에 고정돼 있는데 알림만 꺼져 있더라. 지우지도 못하고 열지도 못하는 자리에 그대로 둔 거야. 이별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의 밤은 대개 이렇게 흘러가. 몸은 오늘에 있는데, 마음만 자꾸 어제로 걸어가.
사실 별이는 그 창을 며칠째 보고 있었어. 첫날은 불이 아예 안 꺼졌고, 다음 날은 세 시가 넘어 꺼졌고, 오늘은 두 시 반. 아주 조금씩, 본인은 절대 모르는 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거야. 회복이라는 게 대체로 이런 모양이더라. 어느 날 갑자기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어제보다 조금 일찍 눈을 감는 식으로.
별이는 그 창가에 카드 한 장을 살며시 비췄어. 컵 5. 왼쪽에 잔 세 개가 엎어져 있고, 쏟아진 것이 물길처럼 길게 흘러 나가는 카드야. 고양이는 그 한가운데 앉아 있고. 슬픈 그림 맞아. 근데 이 카드엔 잘 안 보이는 구석이 하나 있어. 오른쪽 옆에, 아직 넘어지지 않은 잔이 두 개 그대로 서 있다는 것.
여기서 흔히들 이렇게 말해. "저쪽을 봐, 두 개나 남았잖아." 근데 그림을 다시 보면 얘기가 좀 달라져. 저 고양이는 엎어진 쪽도, 남은 쪽도 안 봐. 그냥 정면을 보고 있어. 어느 쪽도 눈에 안 들어오는 시간이 진짜로 있거든. 그 시간을 건너뛰고 고개부터 돌리면,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오기도 하더라. 미련은 못난 감정이 아니라, 마음이 아직 계산을 끝내지 못했다는 신호에 가까워.
컵 5는 재촉하지 않아. 지금은 쏟아진 걸 바라보는 시간이 맞다고, 억지로 "난 괜찮아"를 연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줘. 다만 눈물이 조금 마른 어느 날, 옆에 남은 잔 두 개가 문득 눈에 들어올 거라고. 돌아보는 건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애도에 정해진 기한 같은 건 없어. 석 달이면 충분하다느니 백 일이면 끝난다느니 하는 건 남의 통계일 뿐이고, 네 마음은 그 표에 안 적혀 있어.
근데 만약 네가 사진첩을 여는 이유가 그리워서가 아니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져. 내가 뭘 잘못했는지 증거를 찾으려고 넘기는 거라면 — 그건 애도가 아니라 재판이야. 새벽의 그 법정은 피고도 너, 판사도 너라서 판결이 늘 같은 쪽으로 나거든. 그럴 땐 화면을 덮고 이렇게 물어봐. "내가 지금 알고 싶은 게 사실이야, 아니면 용서야?" 답이 두 번째라면 그건 폰 안에 없어. 상대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그 사람만 아는 거고, 네가 밤새 뒤져도 나오지 않는 종류의 정보야.
이별을 빨리 정리하는 법 같은 건 별이도 몰라. 슬픔엔 지름길이 없거든. 다만 지금 네가 선 자리는 끝난 길이 아니라 잠깐 세워둔 갓길이야. 시동 끄고 창 내려두고 숨 고르는 구간. 여기 서 있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목적지가 사라지지는 않아. 그리고 혼자 견디기엔 너무 무거운 밤이 며칠씩 이어지면, 곁의 사람이나 전문가의 손을 잡아도 돼. 그건 지는 게 아니라 쉬어 가는 거야.
오늘은 딱 하나만 하자. 사진첩 대신 이불을 끌어당기고 눈을 감는 것. 그것도 어려우면 폰을 침대에서 두 걸음쯤 떨어진 데 두는 것까지만. 언제 뒤를 돌지, 돌긴 돌지는 전부 네가 정하면 돼. 남은 잔 두 개는 도망 안 가. 별이가 담장 위에서 확인했어.
별이가 담장에서 내려오려는데 파란 불빛이 꺼졌어. 두 시 사십 분. 어제보다 십 분 늦었네. 그래도 괜찮아. 회복은 직선으로 안 가거든. 어떤 밤은 뒤로 가고 어떤 밤은 앞으로 가면서, 멀리서 보면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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