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별이는 지붕 끝에 앉아 별꼬리를 살랑이며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었어. 창이란 창은 거의 다 깜깜한데, 딱 한 집만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해. 고양이는 원래 이런 창을 못 지나치거든. 슬쩍 들여다봤지.
한 사람이 이불 속에 엎드려서 휴대폰을 켰다, 껐다, 또 켜. 메시지 창에 "자니?" 세 글자를 썼다가 — 지우고. "뭐해?" 썼다가 — 또 지우고. 그러다 상대 프로필 사진을 크게 확대했다가, 잘못 누를까 봐 화들짝 손을 뗐어. 그 화면을 몇 번이나 껐다 켜는지 세다가, 별이는 그만뒀어. 이건 세는 게 의미가 없는 밤이거든.
썸이라는 건 참 이상한 길이야. 분명 앞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표지판이 하나도 없어. 이게 시작인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구간인지 아무도 안 알려줘. 그래서 자꾸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게 되지. 한 발 떼려다 말고, 방금 온 길이 맞나 되짚고. "ㅋㅋ"가 두 개였는지 세 개였는지로 하루치 기분이 갈리기도 하고.
그때 별이가 조용히 카드 한 장을 비췄어. 컵 2. 두 고양이가 마주 보고 앉아 있고, 그 사이에 잔 두 개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놓여 있는 카드야. 근데 별이가 미리 말해둘게 — 이 카드는 "이미 답 나왔어"라고 말해주는 카드가 아니야. 대신 "지금 둘 사이에 뭔가 오가고 있어, 그 흐름은 진짜야" 정도를 알려줄 뿐이야.
별이가 이 그림에서 제일 오래 보는 건 사실 잔이 아니라 둘 사이의 거리야. 그림 속 두 고양이는 딱 붙어 있지도, 아주 멀지도 않아. 서로가 잘 보이는 만큼만 떨어져 앉아 있지. 썸이 딱 그 거리거든. 그리고 그 거리는 한쪽이 성큼 다가선다고 좁혀지는 게 아니라, 두 잔이 같이 움직여야 좁혀져.
썸이 답답한 건 확신이 없어서잖아. 근데 확신은 카드가 쥐여주는 게 아니더라. 컵 2가 보여주는 건 '가능성'이지 '정답'이 아니거든. 게다가 상대 마음은 나도, 카드도 대신 못 읽어 — 그건 오직 그 사람만 아는 거야. 누가 "그쪽도 널 좋아해"라고 딱 잘라 말해주면 잠깐 시원하겠지만, 그건 위로지 사실은 아니야.
흔히들 썸엔 밀당이 답이라고 하잖아. 하루쯤 답을 늦춰봐라, 먼저 연락하지 마라. 별이 생각은 좀 달라. 그렇게 만들어낸 거리는 상대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네가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지만 보여주거든. 재는 동안 정작 네 마음이 어디쯤 왔는지는 놓치게 되고.
근데 만약, 연락도 약속도 늘 네가 먼저 꺼내는 쪽이었다면 — 그건 좀 다른 이야기야. 두 잔 중 하나만 계속 기울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럴 땐 상대 마음을 더 캐물을 게 아니라, 잠깐 손을 내려놓고 저쪽 잔이 스스로 움직이는지 봐도 돼. 시험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좀 쉬려고.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상대 마음을 알아내려 애쓰는 대신, 네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부터 들여다봐. 오늘 나눈 대화를 다시 읽으면서 뜻을 캐지는 말고, 그 대화가 끝난 뒤 네 기분이 어땠는지를 한 단어로만 정해보는 거야. 가벼웠는지, 초조했는지. 답을 밖에서 찾는 밤은 길어지더라. 안쪽을 보는 밤은 의외로 금방 짧아지고.
새벽 한 시쯤 그 집 불이 완전히 꺼졌어. 결국 아무것도 안 보냈더라. 별이는 그걸 실패라고 보지 않았어. 오늘 못 보낸 문장은 내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하룻밤 만에 사라질 마음이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오래 켰다 껐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썸은 결국 둘이 같이 만드는 길이야. 한쪽만 애써선 안 트여. 오늘 네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네 마음 한 칸을 솔직하게 정리해 두는 것. 그거면 충분해. 나머지 한 걸음은 그다음에 디뎌도 하나도 안 늦어. (별이는 그동안 지붕에서 별꼬리 흔들며 기다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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