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가 가까운 시간의 버스 정류장. 별이는 정류장 지붕에 엎드려 별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어. 버스가 한 대 서고, 문이 열리고 — 근데 그 사람은 안 탔어. 노선도만 한참 올려다보다가 버스를 그냥 보내더라. 한 손엔 식어가는 커피, 화면엔 채용 공고.
화면을 슬쩍 봤는데 저장해둔 공고가 스무 개도 넘더라. 하나하나 열어보진 않고 위아래로 쓸어 올리기만 해. 그러다 파일 목록으로 넘어갔는데 이력서 이름이 '이력서_최종_최종2_진짜최종'이야. 별이는 그 파일명만 보고도 알겠더라. 이 사람, 몇 달째 같은 자리에 서 있구나.
이직 고민의 얼굴은 두 개야. 설렘, 그리고 두려움. 새 자리를 상상하면 가슴이 조금 뛰는데, 바로 다음 순간 겁이 나. 여기서 쌓은 게 아까워서, 낯선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일까 봐. 이 둘이 번갈아 올라오니까 밤마다 같은 자리를 맴도는 거지. 낮의 나랑 밤의 내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니까 아침이 되면 또 원점이고.
주변에서 던지는 말들도 제각각이야. 도망치듯 옮기면 어디 가서도 똑같다는 사람이 있고, 버티는 게 미련한 거라는 사람이 있고. 별이가 보기엔 둘 다 남의 자리에서 하는 말이야. 도망인지 아닌지는 그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만 알잖아. 남의 입에서 나온 기준을 내 이력서에 붙여두면, 어느 쪽을 골라도 계속 뒤가 켕겨.
별이는 노선도 옆에 카드 두 장을 비췄어. 펜타클 8 — 작업대 앞에서 별을 하나씩 새기는 장인의 카드야. 옆엔 이미 완성한 것들이 놓여 있는데, 재밌는 건 그림의 눈이 완성품이 아니라 여전히 손에 가 있다는 거야. 네 실력은 회사 이름표가 아니라 그 손에 새겨져 있다는 뜻이지. 어디로 옮겨도 그건 같이 가.
근데 이 카드엔 뒷면도 있어.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만드는 게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으면, 그건 숙련이 아니라 관성이 되거든. 아까 그 파일명이 별이 눈에 밟힌 게 그래서야. 이력서_최종_최종2_진짜최종 — 스무 번쯤 고쳤다는 뜻이잖아. 근데 고치는 일은 안전해. 아무 결과도 안 돌아오니까. 지원은 답이 오거나 안 오거나 둘 중 하나라 무섭고. 그래서 손은 자꾸 안전한 쪽으로 옮겨 가. 하나만 말해두자면, 지원은 계약이 아니야. 붙어도 안 갈 수 있고, 그래도 아무도 뭐라 안 해.
물론 아직 안 내는 데에 네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답이야. 다만 '준비가 덜 돼서'라는 문장이 몇 달째 그대로라면, 덜 된 게 준비인지 마음인지는 한 번쯤 갈라볼 만해. 둘은 필요한 게 서로 다르거든. 앞쪽은 시간이 채워주고, 뒤쪽은 시간이 지나도 잘 안 채워져.
그리고 전차. 이 카드에서 탈것을 끄는 건 말이 아니라 별 두 개야. 구름 위를 나란히 달리고, 뒤로는 긴 자취가 한 방향으로 흘러. 눈여겨볼 건 속도가 아니라 그 자취가 흩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야. 힘이 세서가 아니라 두 별이 같은 쪽을 보고 있어서 그래. 액셀은 나중 문제고, 핸들이 먼저라는 거지.
그러니 오늘 밤 정리할 질문은 "옮길까 말까"가 아니야. 지금 있는 곳이 싫어진 건지, 가고 싶은 곳이 생긴 건지. 이름만 같은 고민일 뿐, 이 둘은 출발점부터 서로 달라. 목적지 없이 노선도만 들여다보면 어느 버스든 다 애매해 보이거든.
근데 만약 둘이 섞여 있다면 — 대개는 섞여 있어 — 순서만 매겨봐도 돼. 오늘 밤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야. 저장해둔 공고에서 회사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고 다시 읽어보는 거. 이름을 가렸는데도 여전히 눈이 가는 게 있다면 네 마음은 '가고 싶은 쪽'에 조금 더 기운 거고, 전부 밋밋해진다면 지금 무거운 건 '여기'일 수도 있어. 답은 아니야. 그냥 네가 어느 방향을 보고 있는지 비춰보는 손전등 같은 거지.
그 사람은 결국 다음 버스에 탔어. 근데 별이가 본 건 탄 순간이 아니라, 그 전에 노선도에서 눈을 뗀 순간이야. 어느 번호에 오를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정하는 것 — 별이가 하는 일은 네가 노선도를 읽는 동안 옆자리를 지키는 것 정도야. 노선도가 아는 건 길뿐이야. 목적지는,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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