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24시 코인 빨래방. 살짝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별이는 멈춰 있는 세탁기 위에 올라앉았어. 손님은 딱 한 명인데, 세탁물이 좀 이상해. 달랑 셔츠 한 장. 소매의 얼룩 하나 때문에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온 거야.
세탁기가 도는 동안 그 사람은 오늘 하루도 같이 돌리고 있었어. 낮에 한 말실수 하나를 몇 번이고 되감기하면서. 회의 끝 무렵에 괜히 덧붙인 한마디, 그때 옆자리 사람이 살짝 웃던 표정, 그 웃음이 무슨 뜻이었을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벌써 잊었을 텐데, 본인만 못 잊어. 자책이 그래. 잘한 아흔아홉은 세지도 않고, 어긋난 하나만 밤새 움켜쥐거든.
이럴 때 흔히들 그러잖아. 자책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고. 근데 별이가 밤마다 지붕에서 지켜본 바로는 좀 다르더라. 반성은 한 번이면 제 할 일을 다 해. "아, 그 말은 안 할걸" 하고 다음 자리에서 조심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야. 열 번째부터는 나아지는 게 아니라 그냥 닳아. 되감기 버튼 누르는 손만 아파지고, 화면은 똑같은 장면에서 멈춰 있고.
별이는 별꼬리 불빛으로 세탁기 유리문에 카드 한 장을 비췄어. 펜타클 4. 동전 하나를 품에 꼭 끌어안고 안 놓는 카드야. 자세히 보면 품에 안은 것만이 아니라 머리 위에도, 발밑에도 동전이 있어. 지키는 게 몸을 통째로 둘러싼 모양이지. 오늘 이 카드가 가리키는 건 돈이 아니야 — 네가 그렇게 끌어안고 있는 게 자책이라는 거지. 그걸 두 팔 가득 쥐고 있으면 새로 들어올 좋은 것들이 설 자리가 없고, 무엇보다 그 자세로는 어디로도 잘 못 움직여.
그리고 한 장 더. 별. 나랑 이름이 같아서 꺼낼 때마다 조금 쑥스러운 카드야. 그림 속에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붓고 있는데, 쏟아붓는 게 아니라 아주 가늘게 흘려. 그리고 그 물이 닿은 자리에서 별이 하나 돋아나 있어. 회복이 그런 모양이라는 거야.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가늘게, 대신 끊기지 않게. 이 카드는 "빨리 털어내"라고 재촉하지 않아. 밤이 깊어도 별 하나는 떠 있다고, 딱 그것만 알려줘.
오늘의 실수는 오늘 있었던 수많은 일 중 하나일 뿐이야. 너는 그 하나보다 훨씬 크고 넓은 사람이고. 그러니 자책이 밀려오면 오늘 잘한 것도 하나만 같이 세어봐. 대단한 거 말고 — 지각 안 한 거, 밥 챙겨 먹은 거, 미루던 답장 하나 보낸 거면 충분해. 이왕이면 소리 내서 한 문장으로 말해보고. 머릿속에서만 굴리면 자책 쪽이 늘 목소리가 크거든.
근데 만약 이 되감기가 오늘 하루짜리가 아니라면 얘기가 좀 달라. 며칠, 몇 주째 밤마다 같은 장면이 재생되고 잠이나 입맛까지 같이 흐트러진다면, 그건 성격 탓이 아니라 마음이 너무 많은 걸 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 그럴 땐 혼자 다 돌리려 하지 말고 곁의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꺼내 보여줘도 돼. 빨래도 손으로 짜는 것보다 탈수기에 맡기는 게 낫잖아.
탈수가 끝나고 그 사람이 셔츠를 꺼내 불빛에 비춰봤어. 얼룩이 어디 있었더라 — 소매를 뒤집어가며 한참 찾다가 결국 피식 웃더라. 꽉 쥐고 있을 땐 그렇게 크던 게, 내려놓으면 찾기도 어려워져. 오늘 네 자책도 그랬으면 좋겠어. 물론 언제 손을 펼지는 네가 정하는 거고 — 별이는 그때까지 세탁기 위에서 기다릴 줄 아는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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