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의 놀이터는 고양이 차지야. 별이가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별꼬리를 흔들고 있는데, 누가 그네에 와서 앉더라. 어른이 그네에 앉는 밤은 대체로 마음이 복잡한 밤이지. 옆 그네는 비어 있었어. 학교 다닐 땐 늘 저기 같이 앉던 친구가 있었을 텐데.
요즘 그 친구 소식을 건너서 들었대. 이직했다더라, 이사 간다더라 — 예전 같으면 제일 먼저 알았을 이야기를 다른 사람 입으로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지지. 크게 싸운 것도 아닌데,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멀어졌지 싶고. 대화창을 열어보면 마지막 메시지가 작년 생일이야. "축하해", "고마워." 딱 거기서 끊겨 있어. 누가 잘못한 것도 없이 그냥 끊겨 있다는 게 제일 이상하지.
이럴 때 흔히 "나 손절당한 건가" 싶어져. 근데 별이가 밤마다 창들을 들여다보며 느낀 건 좀 달라. 멀어진 사이 중에 누가 작정하고 끊은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어. 대개는 서로 사는 속도가 달라졌을 뿐이야. 한쪽은 야근이 길어졌고, 한쪽은 돌볼 사람이 생겼고, 한쪽은 아예 동네를 옮겼고. 물론 그 친구가 지금 무슨 마음인지는 별이도 몰라 — 그건 그 친구만 아는 거야. 다만 '연락이 뜸하다'와 '나를 밀어냈다'가 같은 말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어.
별이는 빈 그네 위에 카드 한 장을 비췄어. 소드 3. 검 세 자루가 꽂혀 있고, 그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그림이야. 처음엔 칼 개수에 눈이 가는데, 별이는 그 자세를 더 오래 봤어. 도망치는 자세가 아니거든. 눈을 감고 버티는 자세야. 그러니까 이 카드는 "끝났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프다", 그리고 "지금 통과하는 중이다"라고 말하는 카드야. 아픈 건 그만큼 소중했다는 증거이기도 해. 아무래도 좋은 사이였다면 애초에 아무 느낌도 없었을 테니까.
관계에도 계절이 있어. 매일 붙어 있던 사이가 각자의 겨울을 지나느라 잠시 멀어지기도 하고, 몇 년 만에 다시 여름처럼 가까워지기도 해. 지금 확실한 건 하나야. 네 마음이 아직 시큰하다는 것. 그 시큰함은 서둘러 없앨 게 아니라, 그 자리가 아직 비어 있다는 표시로 봐도 돼.
이런 밤에 제일 자주 올라오는 건 사실 그리움이 아니라 자존심이야. 나만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먼저 연락하면 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손가락은 대화창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 나와. 근데 연락에는 이기고 지는 게 없어. 점수판이 아예 없는 판이라 먼저 두는 쪽이 잃을 것도 없고. 물론 그쪽이 그걸 어떻게 받을지는 별이도, 너도 몰라 — 그건 그 사람 몫이니까. 다만 안 보낸 메시지는 아무 결과도 없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지.
며칠 전엔 여기서 세 블록쯤 떨어진 창에서도 비슷한 걸 봤어. 누가 침대에 엎드려서 이름 하나를 검색창에 넣었다가 지우더라. 그게 네 친구였다는 얘기는 아니야. 별이도 그런 건 모르고. 다만 이런 밤이 한 집에만 있는 건 아니더라는 것.
근데 멀어진 계기가 뚜렷한 사건이라면 순서가 달라져. 무심코 넘어간 말 한마디, 서운했는데 끝내 못 꺼낸 일 같은 거. 그럴 땐 안부부터 보내지 말고, 그날 있었던 걸 사실과 내 해석으로 갈라서 적어봐. "내 얘기 도중에 화제를 바꿨다"는 사실이고, "나를 하찮게 여긴다"는 해석이야. 이 둘만 갈라놔도 꽂혀 있던 칼 중 하나쯤은 저절로 빠지더라.
이건 꼭 덧붙일게. 그 시큰함이 몇 주째 안 가라앉고 하루 전체를 눌러앉는다면, 그건 친구 한 명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어. 혼자 삼키지 말고 곁의 사람한테 말해도 되고, 전문가랑 얘기해봐도 돼. 손을 내미는 건 관계에 서툰 사람의 표시가 아니야.
오늘 할 수 있는 건 소박해. 안부 한 줄, "잘 지내?" 그거면 돼. 대신 보내기 전에 너한테 먼저 물어봐. 답이 늦게 오거나 아예 안 와도 괜찮을 만큼 오늘의 내가 괜찮은가. 괜찮으면 보내고, 아직 아니면 다음 밤으로 미뤄도 돼. 보낼지 말지부터가 네 선택이니까. 별이는 빈 그네를 한 번 밀어두고 갈게. 아무도 안 앉아 있어도 한동안 혼자 흔들릴 거야. 그 모양이 좀 마음에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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