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의 고양이한테는 저마다 피서지가 있어. 별이 건 하천 다리 밑, 물바람이 지나가는 넓적한 돌 위야. 새벽 두 시, 거기 배를 깔고 있는데 산책로 벤치에 누가 털썩 앉는 소리가 났어. 얼음컵을 든 사람이었어. 운동복도 아니고, 산책 나온 걸음도 아니고. 몸은 젖은 수건처럼 축 처졌는데, 눈만 말똥한 얼굴.
별이는 저 얼굴을 알아. 침대에서 한참 뒤척이다 백기 들고 나온 얼굴이야. 며칠째 이어지는 열대야에 눕기 전까진 분명 눈이 감기게 피곤했는데, 막상 누우니까 생각이 벌떡 일어나는 거. 낮엔 조용하던 걱정들이 밤에만 줄을 서서 찾아오고, 누웠다 앉았다 시간이나 보려고 든 휴대폰에 눈만 더 말개지고. 몸은 껐는데 머리에 불이 안 꺼지는 밤, 요즘 이런 밤 보내는 사람 많더라.
별이는 벤치 옆자리에 카드 한 장을 비췄어. 소드 9. 한밤중에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사람, 그리고 벽에 걸린 아홉 자루의 칼. 무섭게 생겼지? 근데 그림을 잘 봐. 그 칼들, 전부 벽에 걸려만 있어. 단 한 자루도 이 사람을 향해 있지 않아. 밤에 몰려오는 생각이 꼭 이래. 실제보다 훨씬 크고 날카로워 보이는데, 정작 벽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거든.
그러니까 이 카드는 "큰일 났다"는 경고가 아니야. "지금은 생각이 부풀어 보이는 시간대야"라는 표시에 가까워. 새벽 세 시는 인생을 재판하기엔 영 좋은 법정이 아니거든. 그 시간에 내린 결론은 아침 햇빛 아래서 다시 보면 절반쯤 딴소리인 경우가 많더라. 그러니 오늘 밤엔 답을 내려고 애쓰지 말고, 판결은 내일 낮의 너한테 넘겨. 밤의 너는 접수만 하는 거야. "그 걱정, 접수됐어. 처리는 내일." 언제 심리를 열지는 네가 정하면 되고.
그리고 이건 별이가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 이런 밤이 몇 주씩 이어져서 낮까지 휘청인다면, 그건 의지로 버틸 일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물어봐도 되는 일이야. 그건 유난이 아니라 정비에 가까워.
그 사람은 얼음컵의 마지막 조각을 오도독 씹고 일어났어. 잘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려고 애쓰는 것도 그만하기로 한 얼굴로. 잠은 쫓아가면 도망가는 고양이 같은 데가 있어서, 등을 보이고 딴청을 부리면 슬그머니 곁에 와 눕기도 하거든. 별이는 다리 밑 돌 위에서 먼저 눈을 붙일게. 이 방면의 시범 조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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