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토요일 밤, 열대야라 아스팔트가 아직 낮의 열을 뱉고 있었어. 별이는 빌라 뒷골목, 재활용 수거함 옆 낮은 담 위에 앉아 별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지. 이런 밤엔 고양이도 웬만해선 안 움직여. 그때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나더라. 파자마 차림에 페트병 봉지를 든 사람이 나왔어. 종일 집에 있다가, 분리수거 하러 오늘 딱 한 번 바깥 공기를 쐬러 나온 얼굴이었지.
별이는 단번에 알아봤어. 저 표정, 저녁에 약속을 취소한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 며칠 전엔 분명 "그날 보자" 했는데, 막상 오늘이 되니까 나갈 기력이 통 안 나는 거. 옷 갈아입을 힘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을 힘도 어디로 갔는지 안 잡히고. 취소 문자는 또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미안, 오늘은 좀…" 뒤에 뭘 붙여야 덜 미안할지 고르다가 결국 말줄임표로 끝내고 전송. 보내고 나면 마음이 묘해져. 후련한데 동시에 미안하고, 안 나간 게 다행이면서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그러고 나선 이상한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지. 모임 사진이 올라왔나 안 올라왔나 자꾸 확인하고, 올라오면 서운하고, 안 올라오면 더 신경 쓰이고. 취소한 건 나인데 소외된 기분은 왜 내 몫인지 모르겠고.
별이는 담 위에 카드 한 장을 비췄어. 은둔자. 어두운 능선 위에 홀로 앉은 고양이가 등불 하나를 들고 있는 카드야. 얼핏 외로워 보이지? 근데 잘 봐. 이 고양이,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등불이 아주 작아서 딱 한 걸음 앞까지밖에 못 비추는데, 그게 흠이 아니라 요점이거든. 지금은 멀리까지 내다볼 때가 아니라 발밑을 볼 때라는 거지. 은둔자가 든 건 남한테 보여주는 등이 아니라, 자기 발밑을 비추는 등이야.
사회적 배터리라는 말, 괜히 생긴 게 아니야. 사람이 싫어진 게 아니라 그냥 방전된 거지. 흔히 이걸 내향적인 사람만의 일로 여기는데, 별이가 이 동네 저 동네 다녀본 바로는 그렇지도 않더라.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잘 웃던 사람이 집에 와선 제일 오래 누워 있기도 하고. 충전이 필요한 걸 두고 "내가 이상한가" 하고 자책할 일은 아니야. 소외되긴 싫은데 엮이고도 싶지 않은 그 애매한 마음도, 이상한 게 아니라 지쳤다는 아주 정직한 신호일 뿐이고.
다만 이 카드가 늘 "쉬어"라고만 하진 않아. 은둔자가 진짜 묻는 건 그 거리가 정리를 위한 건지, 피하기 위한 건지야. 혼자 있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생각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면 그건 필요한 물러섬이고. 반대로 방에 있는 내내 같은 걱정만 맴돌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가는 게 더 무서워진다면 그건 충전이 아니라 문이 굳어가는 쪽일 수 있어. 어느 쪽인지는 네가 제일 잘 알 거야.
그러니 오늘 취소한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마. 대신 이 밤을 진짜 네 걸로 써봐. 에어컨 바람 아래 좋아하는 거 하나면 충분해. 하나만 덧붙이자면, 취소 문자에 "다음 주쯤 내가 연락할게" 같은 한 줄을 붙여두면 미안함이 밤새 불어나는 걸 좀 덜어주더라. 안 붙였어도 괜찮고. 다만 이 물러섬이 너무 길어져서 세상이랑 아주 끊긴 것 같으면, 그땐 슬쩍 곁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거나 전문가와 이야기해봐도 돼.
그 사람은 봉지를 수거함에 넣고도 바로 안 들어가더라. 뚜껑을 닫고 그 옆에 선 채로 파자마 소매를 걷고, 미지근한 밤바람을 한참 맞았어. 오늘 하루 중에 제일 편해 보이는 얼굴이었지. 나갈지 쉴지, 언제 다시 불을 켤지는 언제나 네가 정하는 거고. 별이는 담 위에서 그 뒷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바람이나 쐬며 천천히 가볼게.
오늘 내 마음이 궁금하면, 별이가 카드 한 장 뽑아줄게. 오늘의 타로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