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의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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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계획만 세우다 지칠 때, 진짜 쉬는 법

열대야가 이어지던 밤, 별이는 24시간 마트에 들어가 있었어. 고양이한테 여름의 마트란 바닥이 시원한 곳이거든. 스낵 진열대 위에 앞발을 모으고 있는데, 한 사람이 카트를 밀고 여행용품 코너 앞에 멈춰 섰어. 카트엔 선크림과 목베개, 손엔 휴대폰. 화면엔 시간 단위로 빼곡한 휴가 일정표가 떠 있더라. 빈칸이 하나도 없는.

쉬러 가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어. 시험 전날의 얼굴이었지. 저장해 둔 숙소는 열몇 개, 뭘 골라도 아쉬울 것 같고, 이번 휴가를 완벽하게 보내지 못하면 어쩐지 손해일 것 같은 마음. 회복하려고 떠나는 건데 계획을 짜다가 먼저 지쳐버리는 — 여름마다 별이가 자주 보는 표정이야.

그 사람은 목베개를 카트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태그를 봤어. 이걸 사면 비행기에서 좀 자겠지, 자야 첫날을 알차게 쓰지, 첫날을 알차게 써야 이번 휴가가 안 아깝지. 목베개 하나 고르는 뒤로 조건이 줄줄이 달려 있더라. 쉼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쉼을 심사하고 있는 거야.

별이는 카트 안 목베개 위에 카드 두 장을 살짝 비췄어. 컵 7 — 구름 위에 잔이 일곱 개나 떠 있는 카드. 근데 이 그림에서 진짜 볼 건 잔이 아니라 그 아래 고양이야. 올려다보기만 해. 손을 뻗지도, 하나를 내려보지도 않고. 선택지가 많아서 좋은 게 아니라, 많아서 아무것도 못 고르게 되는 마음을 비추는 카드지. 떠 있는 것들엔 아직 무게가 없거든. 무게가 생기는 건 하나를 내려서 발밑에 놓는 순간이야.

그리고 완드 4 — 별이 얹힌 기둥 네 개에 꽃 화환을 걸어둔, 쉼과 안도의 카드. 근데 그림을 잘 봐. 여긴 지붕이 없어. 벽도 없고, 위는 그냥 밤하늘이야. 다 지어지지도 않은 자리인데 벌써 꽃부터 걸어뒀지. 그리고 가운데 문은 활짝 열려 있고, 고양이는 그 문을 지나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야. 허락을 기다리며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이미 통과한 거지. 쉼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낸 다음에 받는 상이 아니라는 뜻이야.

흔히 "쉬는 것도 계획을 잘 세워야 잘 쉰다"고들 하잖아. 반은 맞아. 근데 칸이 늘어날수록 휴가는 또 하나의 숙제가 돼. 알차게 못 쉬면 본전을 못 뽑는 것 같고, 돌아와서 "뭐 했어?" 하는 질문에 내놓을 게 있어야 할 것 같고. 근데 회복은 일정표의 채운 칸이 아니라 빈칸에서 일어나더라. 늦잠, 멍하니 보낸 오후, 계획에 없던 낮잠 같은 데서.

물론 계획 짜는 그 시간이 제일 즐거운 사람도 있어. 지도 위에 핀 꽂는 게 이미 여행의 절반인 사람. 그런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져 — 그건 준비가 아니라 놀이니까 실컷 해도 되지. 구분은 이렇게 해봐. 일정표를 열 때 마음이 설레는지, 조여드는지. 조여드는 쪽이라면 그건 벌써 일이 된 거야.

그러니 이번엔 일정표에 비워둔 칸을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때. 오늘 밤에 바로 되는 것도 하나 있어. 저장해 둔 숙소 목록에서 두 개만 지우는 거야. 고르는 게 아니라 지우는 것부터. 떠 있는 걸 줄여야 남은 게 땅으로 내려오거든. 그리고 혹시 다녀와서도 계속 무겁고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면, 그건 휴가로 풀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럴 땐 곁의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그 무거움을 한 번 꺼내 보여줘도 돼.

그 칸에 뭐가 들어올지는 가서 정해도 되고, 아무것도 안 들어와도 돼. 어디로 갈지, 얼마나 비울지는 네가 정하는 거야. 별이는 계획 없이도 하루 스무 시간을 쉬는데 — 이 방면으론 꽤 전문가로서 하는 말이야.

이번 여름 네 계획표에서 제일 좋은 칸은, 어쩌면 빈칸일지도 몰라. 떠나기 전 마음, 한 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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