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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끼는 하루 만드는 법

밤 아홉 시 반,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 별이는 맞은편 플라스틱 의자에 올라앉아 별꼬리를 얌전히 말고 있었어. 그 사람은 삼각김밥을 한 입 물다 말고 자꾸 휴대폰을 봐. 친구 고민에 답장하고, 엄마 병원 예약을 알아봐 주고, 내일 회의를 걱정하고. 챙기는 목록엔 빈칸이 없는데, 그 어디에도 자기 이름은 없더라.

김밥은 반쯤 남은 채로 식어갔어. 답장 하나 보내고 나면 또 하나가 오고, 예약 화면을 띄웠다가 회의 자료가 생각나서 메모장을 열고. 그러는 사이 김밥은 계속 손에 들려만 있어. 별이는 그 손을 좀 오래 봤어. 남을 챙기는 쪽으로는 그렇게 부지런한 손이, 자기 입까지 오는 길만 자꾸 밀리더라.

별이는 테이블 위에 카드 한 장을 비췄어. 여황제. 풍요와 돌봄의 카드야. 그림을 잘 봐 — 이 사람, 누굴 챙기느라 서성이지 않아. 밀과 꽃이 둥글게 둘러싼 한가운데에 먼저 자기가 편안하게 앉아 있어. 애쓰는 동작이 하나도 없지. 그리고 잘 안 보이는 데 하나 더. 둘러싼 것들 사이에 지나갈 자리가 남아 있어. 다 채워두지 않은 거야. 여황제의 돌봄은 거기서 시작해. 남을 향하기 전에 먼저 나를 향하고, 꽉 채우기 전에 숨 쉴 틈을 남기는 것.

하나 더 짚자면, 그 밀과 꽃은 오늘 아침에 심은 게 아니야. 그림 속에서 이미 다 자란 상태로 있어. 자기를 아끼는 일이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는 뜻이지. 그래서 오늘 하나도 못 챙겼다고 무너질 일도 아니고, 오늘 반신욕 한 번 했다고 전부 채워지는 것도 아니야. 밭은 하루로 만들어지지 않고, 하루 안 돌본다고 사라지지도 않아.

근데 왜 하필 자기 이름만 자꾸 목록에서 빠질까. 별이 생각엔 결과가 안 보여서야. 친구 고민을 들어주면 고맙다는 말이 돌아오고, 엄마 예약을 잡아주면 안심한 목소리가 돌아와. 근데 나한테 잘해준 날은 아무도 안 알아줘. 잘했다고 말해줄 사람이 그 자리엔 없거든. 티도 안 나고 칭찬도 없으니 제일 먼저 밀리는 거지. 별이가 오늘 이 의자에 앉아 있는 건 그래서야 — 누구 하나는 봤다고 말해주려고.

이기적인 거냐고? "너부터 챙겨"라는 말이 어쩐지 차갑게 들릴 때가 있지. 근데 마음은 통장이랑 비슷해서, 채워진 데서만 나눠줄 수 있어. 빈 채로 계속 퍼주면 언젠가 잔액 부족이 떠. 그 알림이 좀 엉뚱한 데서 울린다는 게 문제야. 별것 아닌 말에 욱하거나, 좋아하던 게 하나도 안 즐겁거나,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거나. 요즘 그런 게 늘었다면 성격이 나빠진 게 아니라 잔액이 바닥이라는 뜻일 수 있어.

그리고 나를 아끼는 데 돈은 별로 안 들어. 뭘 사서 안기는 얘기가 아니야. 씻고 바로 눕기, 물 한 잔 천천히 마시기,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넘기지 않고 끝까지 듣기, 화면 엎어두고 밥을 따뜻할 때 다 먹기. 알림 십 분만 꺼두기. 돌봄의 진짜 생김새는 이렇게 사소해서, 오히려 대단한 걸 준비하려다 영영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물론 그 챙기는 목록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야. 누굴 돌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차오르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건 이미 네 돌봄의 일부라 굳이 줄일 필요 없어. 구분은 의외로 간단해 — 하고 나서 뿌듯한지, 하고 나서 텅 비는지. 텅 비는 쪽이 며칠째 이어지고 혼자 감당하기가 무겁게 느껴지면, 곁의 사람에게 같이 들자고 말해도 되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손을 잡아도 돼. 도움을 청하는 것도 자기를 돌보는 방식 중 하나거든.

그러니 오늘은 순서만 바꿔보자. 챙길 목록 맨 위 칸에 네 이름을 적는 거야. 한 줄이면 돼. 뭘 적을지는 네가 제일 잘 알 테고, 오늘은 안 적기로 하는 것도 네 선택이고. 그 사람은 결국 식은 김밥을 마저 다 먹고 일어섰어. 유리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깐 보더니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기더라. 별이는 이만 가볼게 — 밤새 돌아다닌 털을 골라야 하거든. 고양이한테 자기돌봄은 꽤 진지한 일이야.

오늘 나를 위한 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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