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의 타로

/ 에피소드 / 자존감

자꾸 과거가 떠오를 때

밤 아홉 시의 한강 다리는 생각보다 붐벼. 뛰는 사람, 자전거, 통화하며 걷는 사람. 별이는 난간 아래 조명 박스 위에 앉아 그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어. 그중에 한 사람만 걸음이 자꾸 느려지더라. 집에 가는 길일 텐데, 몸은 앞으로 가는데 고개는 자꾸 왔던 쪽으로 돌아가. 방금 온 길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지난 일이 자꾸 떠오르는 밤이 있지. 오래전에 끝난 장면인데 어제 일처럼 선명하고, 분명 지나왔는데 마음 절반은 아직 거기 서 있는 것 같은. 별이는 그게 뭐였는지 캐묻지 않을게. 다시 꺼내서 들여다보는 건 오늘 밤 할 일이 아니거든.

대신 다리 아래를 봐. 강물 위로 작은 배가 하나, 불을 달고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어. 별이가 비춘 카드도 딱 그거야. 소드 6. 짐을 싣고 잔잔한 물 쪽으로 건너가는 배의 카드. 이 카드의 다정한 점은, 짐을 버리라고 안 한다는 거야. 배엔 칼 여섯 자루가 그대로 실려 있어. 다 안고 가. 그래도 배는 가. 과거는 지워야 건너지는 게 아니라, 실은 채로도 건너지더라.

함께 나온 심판은 정리의 카드야. 지난 것들에게 "여기까지"라고 조용히 도장을 찍고, 조금 가벼워진 아침으로 깨어나는 것. 억지로 잊는 것과는 달라. 잊으려고 애쓰면 오히려 더 선명해지잖아. 그냥 배에 실어두고, 노를 젓는 거야. 오늘 젓는 만큼만.

그러니 오늘 밤은 그 장면을 한 번 더 돌려보는 대신 뱃머리 쪽을 보자. 지나온 물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결말은 안 바뀌지만, 네가 앞을 보면 다음 장면은 바뀌거든. 혹시 그 짐이 혼자 들기엔 너무 무거운 종류라면, 곁의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노를 잠깐 같이 저어달라고 해도 돼. 배는 혼자 저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야.

다리 위의 그 사람도, 너도, 사실은 이미 배 위에 있어. 강 한가운데서는 얼마나 왔는지 잘 안 보이는 것뿐이야. 그래도 배는 계속 가고 있어 — 네가 노를 놓은 밤에도, 물살이 대신 밀어주면서.

오늘의 한 장으로 마음 정리 →

이 이야기의 카드

관련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