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이의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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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타이밍, 나만 느린 것 같을 때

도서관 뒤편 무인 반납함은 밤마다 두어 번쯤 철컹, 소리를 내. 별이는 그 소리를 동네 시계처럼 여겨왔어. 8월의 끝자락이라 밤공기에 서늘한 결이 한 겹 섞이기 시작한 그날, 반납함 앞에 사람이 섰는데 소리가 한참 안 났어. 책 두 권을 안은 채, 투입구 앞에 그냥 서 있더라.

통화를 막 끊고 온 얼굴이었어. 친구가 웃으면서 던진 말이 아직 귀에 남아 있는 거지. "야, 그거 벌써 몇 주째야?" 악의야 없었겠지. 그래도 그런 한마디가 반납 기한 스티커처럼 이마에 딱 붙어버리는 밤이 있잖아. 그 사람은 책 뒷장 날짜 대신 자기 마음의 날짜를 세고 있었어.

요즘 다들 그런 얘기 하더라. 썸은 한 달 안에 결론이 나야 한다느니, 세 번쯤 만나면 말해야 한다느니.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속도표가 하나 돌아다니는 거야. 거기에 내 마음이 안 맞으면 생각이 줄줄이 따라붙지. 나만 느린가, 지금 말 안 하면 늦는 건가, 이러다 재는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별이는 반납함 옆 시멘트 턱에 올라가 별꼬리 끝으로 먼지를 슥 쓸어 자리를 내고, 카드 두 장을 내려놨어. 펜타클 7. 나무 격자를 타고 오른 덩굴에, 별이 새겨진 동그란 열매가 일곱 개 달려 있어. 눈여겨볼 건 높이야. 맨 위 하나는 격자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아래쪽 몇은 아직 잎사귀 사이에 낮게 달려 있어. 같은 덩굴, 같은 흙인데 올라온 자리가 제각각인 거지. 흙바닥엔 모종삽이 놓인 채고, 고양이는 옆에 앉아 보고만 있어.

별이는 저 모종삽이 놓여 있는 게 마음에 들어. 던져버린 것도 아니고, 계속 파고 있는 것도 아니거든. 손을 잠깐 내려놓고 지금까지 자란 걸 세어보는 시간이야. 지금 네가 하고 있는 것도 그거고. 이건 미루는 게 아니라 재는 거야. 그 둘은 옆에서 보면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달라. 미루는 사람은 안 보려고 등을 돌리는데, 재는 사람은 똑바로 보고 있잖아.

옆에 놓인 컵 페이지는 달빛 깔린 물가야. 고양이가 잔 하나를 내려다보는데, 그 안에 아주 작은 별이 떠 있어. 잔물결에 겨우 뜰 만큼 작지. 그래도 엄연히 별이지. 아직 이름 안 붙은 마음이 딱 저만 해.

그 고양이 표정도 봐. 뭘 기대하고 열어본 얼굴이 아니라, 열어보니 있어서 놀란 얼굴이야. 그 놀람이 설렘인지 당황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고백 타이밍을 재기 전에 사실 먼저 할 일이 그거더라. 이 마음에 이름부터 붙여보는 것. 이름이 안 붙은 마음을 들고 나가면, 말하고 나서 더 헷갈리기도 하거든.

조바심이 드는 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야. 아까워서 그래. 초조함은 대체로 아끼는 것 옆에만 붙어 서 있더라. 그리고 남이 만든 시계는 남의 손목에 맞춰 채워진 거야. 네 마음이 지금 몇 시인지는 그 시계가 알 리 없고.

이건 짚고 갈게. 언제 말하든, 그 말을 상대가 어떻게 받을지는 별이도 카드도 몰라.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 몫이야. 타이밍만 완벽하게 고르면 결과가 따라온다는 계산은 아무리 봐도 안 맞더라. 타이밍이 정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네가 나중에 그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에 더 가까워.

근데 만약, 마음을 이미 비슷하게 흘린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몇 주째 대화가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다면 — 그건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문일 수 있어. 그럴 땐 "언제 말할까"보다 "나는 어디까지 기다려도 괜찮은 사람인가"를 먼저 정해두는 게 너한테 덜 아파. 기준을 정하는 건 포기가 아니라, 네 쪽 시계를 네가 갖는 일이야.

언제가 맞는지는 별이도 몰라. 대신 오늘 밤엔 이것만 해봐. 메모장에 한 줄 적는 거야. "나는 ◯◯◯쯤 되면 말하고 싶어질 것 같아." 빈칸이 잘 안 채워져도 괜찮아. 안 채워진다는 것도 정보거든. 이 조바심이 몇 주째 잠까지 갉아먹는다면, 혼자 굴리지 말고 가까운 사람한테 소리 내어 털어놔도 돼.

한참 뒤에야 철컹, 소리가 났어. 뚜껑이 닫히고 그 사람은 손을 털고 돌아섰지. 기한은 책에나 붙어 있는 거고, 오늘 그 사람은 그걸 하나 내려놓고 갔어. 그날 밤 반납함 소리는 그게 다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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