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난 첫 밤엔 동네 소리가 바뀌어. 매미가 슬슬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풀벌레가 들어오거든. 별이는 그 소리를 따라 골목을 걷다가 결이 다른 소리를 하나 만났어. 쏴아— 하고 길게 뻗는 물소리. 무인 세차장이었지.
부스 안에서 한 사람이 혼자 차를 씻고 있었어. 여름내 앞유리에 눌어붙은 벌레 자국이랑, 그새 켜켜이 앉은 흙먼지. 동전이 허락한 이십 분이었어. 그사이 엎어둔 휴대폰이 두 번 울렸는데, 두 번 다 단톡방 초대였지. 열어보고, 답은 안 하고, 다시 엎어놨어. 반가움보다 먼저 도착한 게 '아, 또 처음부터 다 설명해야 하는구나'였던 거야.
별이는 저 망설임을 요즘 자주 봐. 연락처는 수백 개인데 진짜로 연락하는 사람은 다섯도 안 되지. 넓히기보다 지금 있는 사람들로 충분하다는 얘기, 눈치 보는 게 제일 피곤하다는 얘기도 부쩍 들리고. 그러다 슬며시 스스로를 의심하게 돼. '내가 차가워졌나, 나이 들면서 사회성이 줄어든 건가.'
이럴 때 흔히 인맥이 자산이라고들 하지. 틀린 말은 아닌데, 절반이 빠져 있는 얘기야. 자산에는 관리 비용이 따라붙거든. 이름 하나가 늘 때마다 기억해둘 맥락이 하나 늘고, 살펴야 할 눈치가 하나 늘어. 그 비용을 빼놓고 개수만 세니까, 스무 명을 아는 쪽이 다섯 명과 깊은 쪽보다 무조건 낫다는 말이 되는 거야.
그 사람이 마른 수건을 가지러 간 사이, 별이는 옆 칸 요금함 위로 뛰어올랐어. 앉는 대신 카드 두 장만 나란히 놓고 내려왔지. 컵 3 — 물가에서 고양이 셋이 잔을 맞대고 있는 그림이야. 잔도 셋, 고양이도 셋. 그 이상은 그림에 없어. 그리고 펜타클 9 — 포도덩굴이 우거진 정원에 고양이 한 마리가 혼자 앉아 있는 카드. 별이도 처음엔 저 고양이가 혼자 남겨진 줄 알았거든. 근데 보다 보니 알겠더라. 덩굴도 발치의 화분도 다 저 고양이 손이 닿은 것들이야. 오래 가꿔 온 자리인 거지.
컵 3에서 하나만 더 짚을게. 셋이 저렇게 바짝 모여 있으면 그 자리에 자연히 안과 밖이 생겨. 원 안은 따뜻하고, 밖에 서면 그 따뜻함이 유독 잘 보이지. 요즘 초대창이 반갑기보다 피곤한 게 그 때문일 수도 있어. 새 원에 들어가려면 매번 내가 누구인지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니까.
축배에 필요한 잔은 셋이면 충분했고, 저 정원도 여러 해 물을 준 끝에 저렇게 우거진 거야. 요즘 네가 겪는 건 관계를 못 하게 된 게 아니라, 고르게 된 쪽에 가까워. 스무 명에게 얇게 나눠 붓던 걸 몇 개의 잔에 모아 붓기 시작한 거고.
다만 한 번은 갈라봐야 해. 지금 하는 게 고르는 건지, 피하는 건지. 나가면 좋을 걸 알면서도 몸이 안 일어나고, 편했던 사람의 연락까지 미루고 있다면 그건 정리보다 방전에 가까워. 반대로 안 나간 저녁에 마음이 편했고, 대신 만난 한 사람과는 세 시간이 짧았다면 그건 잘 고르고 있는 거고. 이 둘은 겉으로 똑같이 생겨서, 구분할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오늘 밤에 실제로 되는 건 두 가지야. 하나, 부담스러운 초대 하나는 "요즘 좀 바빠서"로 넘겨도 돼. 둘, 대신 최근에 고마웠던 이름 하나한테 구체적으로 연락해봐. "잘 지내?" 말고 "지난번 네가 해준 말 아직 생각나"처럼. 줄이는 일과 남은 자리를 진하게 만드는 일은 같이 가야 균형이 맞거든.
한 가지만 덧붙일게. 펜타클 9 정원엔 덩굴 사이로 작은 격자문이 하나 나 있어. 안이 아무리 아늑해도 문은 문이거든. 몇 주째 누구와도 말 한마디 안 섞이고 마음까지 가라앉는다면, 그건 혼자 버틸 일이 아니야. 가까운 사람한테 먼저 연락해도 되고, 전문가와 얘기해봐도 돼.
몇 명이 적당한지는 별이가 못 정해줘. 셋이 딱 맞는 사람도 있고 열다섯이 편한 사람도 있어. 네 반경은 네가 정하는 거야.
물소리가 그치고, 그 사람은 앞유리의 물기를 손등으로 슥 훔쳤어. 말개진 유리 너머로 풀벌레 소리가 다시 들어왔지. 별이는 조명이 닿지 않는 쪽으로 두어 걸음 가다가 한 번 돌아봤어. 별꼬리가 짧게 반짝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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