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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 장애가 심한 편이라면

별이는 골목 계단의 중간쯤을 좋아해.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을 다 볼 수 있거든. 저녁 아홉 시, 그 계단 중간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어. 배달 앱을 삼십 분째 스크롤 중이야.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웠다, 다른 가게로 갔다가 다시 처음 가게로. 두 칸 위에서 지켜보던 별이는 알아챘지. 저 사람, 지금 저녁을 고르는 게 아니구나. 하루치 결정에 깔려 있는 거구나.

'결정 장애'라는 말, 별이는 별로 안 좋아해. 못 정하는 게 무슨 성격 결함처럼 들리잖아. 근데 하루에 몇 개를 정했는지 세어보면 얘기가 달라져. 아침에 뭘 입을지, 몇 시 차를 탈지, 그 메일에 "넵"을 붙일지 말지, 회의에서 손을 들지 말지, 그 사람 말에 웃어줄지 말지. 저녁 아홉 시쯤이면 이미 백 번은 정한 뒤야. 그러니 배달 앱 앞에서 멈춰 선 건 고장이 아니라, 그냥 다 쓴 거야.

결정이 유독 오래 걸리는 사람이 있어. 그 신중함을 놀릴 생각은 없어. 다만 — 정하지 않는 건 쉬는 게 아니야. 미룬 결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거든. 아침 것, 낮 것, 저녁 것까지 쌓이면 어깨가 무거운 게 당연해. 네가 우유부단해서 지친 게 아니라, 온종일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채로 지낸 거야.

별이가 계단참에 비춘 카드는 소드 2야. 두 자루 검이 앞에 엇갈려 있고, 고양이는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어. 사람들은 이 카드에서 '고민'을 보는데, 별이 눈엔 손이 먼저 보여. 저 고양이, 검을 쥐고 있지 않아. 앞에 엇갈려 둔 채로 그냥 앉아 있는 거야. 쥔 것도 아니고 놓은 것도 아닌 자세. 그게 제일 안 편해. 그러니까 이 카드가 진짜 묻는 건 "어느 쪽을 고를래?"가 아니라 "언제까지 이 자세로 앉아 있을 거야?"인 거지.

내려놓는 요령은 의외로 단순해.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니까 못 정하는 거야. 완벽한 답은 없어. 조금 더 나은 답이 있을 뿐이지. 그러니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대신, 어디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기우는지만 봐. 51 대 49면 충분히 답이야. 100 대 0이 될 때까지 기다리니까 밤이 새는 거고. 사실 51까지 기울었다는 건 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거든. 머리가 확인 도장을 못 찍어주고 있을 뿐이지.

물론 진짜로 정보가 모자란 경우도 있어. 아직 안 물어봐서, 아직 안 알아봐서 못 정하는 거라면 그건 미루는 게 아니라 절차야. 그럴 땐 "언제까지 알아보고 그날 정한다"고 날짜를 하나 박아둬. 재는 것과 미루는 것의 차이는 끝나는 날이 있느냐 없느냐거든. 끝나는 날이 없는 고민은 계속 무게만 늘어.

덧붙이자면, 고르는 게 며칠째 아예 안 되고 사소한 것 앞에서도 몸이 굳는다면 그건 결정 연습으로 풀 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럴 땐 곁의 사람에게 같이 정해달라고 해도 되고, 오래간다 싶으면 전문가와 얘기해봐도 되고.

연습은 작은 것부터. 오늘 저녁 메뉴, 3분 안에 정해보기 — 한 끼 틀려봤자 내일 점심이 또 와. 규칙을 미리 하나 만들어 두는 것도 방법이야. "세 번째 가게에서는 무조건 고른다" 같은 거. 규칙이 있으면 그 결정은 오늘의 내가 안 해도 되거든. 이렇게 작은 결정 근육이 붙으면, 큰 결정 앞에서도 어깨가 덜 굳어.

그 사람은 결국 처음에 담았던 걸 시켰어. 삼십 분을 돌아서 제자리. 근데 화면을 끄고 나니까 어깨가 툭 내려가더라. 뭘 먹느냐보다 정했다는 게 컸던 거야. 미뤄둔 걸 손에서 놓은 밤은 저녁 메뉴가 뭐였든 조금 가벼워지거든.

참, 고양이는 어디로 뛸지 정할 때까진 한참을 웅크려도, 일단 뛰고 나면 안 돌아봐. 멋있어서가 아니라, 돌아봐도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아서야. 무엇을 고를지는 별이가 정해줄 수 없어 — 그건 늘 네 몫이지. 다만 51을 골랐으면 49는 계단에 두고 가.

갈림길 앞에서 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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