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의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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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후유증, 다녀왔는데 일상이 낯설 때

여름이 끝물로 접어든 평일 저녁, 별이는 버스 정류장 지붕 위에 배를 깔고 있었어. 낮 동안 데워진 지붕이 미지근해서 딱 좋거든. 버스가 서고 한 사람이 내렸는데, 출근 가방 옆면에 비행기 수하물 스티커가 아직 붙어 있더라. 떼는 걸 잊은 건지, 뗄 기운이 없는 건지.

걸음이 어딘가 낯설었어. 휴가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됐는데, 몸만 먼저 도착하고 마음은 아직 짐칸 어딘가에 있는 사람의 걸음. 요즘 별이가 자주 보는 얼굴이야. 메일함 열기가 이상하게 무겁고, 오전이 평소의 두 배로 길고, 지난달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이 갑자기 버겁고. 그러다 슬며시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거지. '나, 다녀와서 게을러졌나.'

별이가 며칠 그 집 창을 지켜봤는데 재밌는 게 하나 있었어. 세탁기는 벌써 두 번 돌았는데 캐리어는 현관에서 반쯤 열린 채 그대로야. 사진첩은 하루에 세 번씩 열어보고, 새벽 네 시쯤 한 번 깨는 것도 여전하고. 몸이 아직 저쪽 시간에 맞춰져 있는 거지. 일상은 이미 시작됐는데 짐만 안 풀린 상태. 지금 마음이 딱 그 모양이야.

별이는 지붕에서 내려와, 물고 온 카드 한 장을 그 사람 발치에 앞발로 툭 — 밀어놨어. 고양이가 뭘 물어다 주는 건 원래 꽤 큰 호의야. 운명의 수레바퀴. 커다란 바퀴 하나가 기호들을 두른 채 도는 그림인데, 그 아래쪽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올려다보고 있어. 바퀴를 돌리는 쪽이 아니라, 도는 바퀴 안에 놓인 쪽이지. 이름은 거창한데 하는 말은 단순해. 모든 리듬은 돌고, 도는 것엔 올라가는 구간과 내려오는 구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멈췄던 바퀴가 다시 구를 땐, 처음 한 바퀴가 제일 뻑뻑하다는 것. 바퀴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야.

근데 별이가 이 카드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다른 데야. 가장자리는 정신없이 도는데, 바퀴 한가운데는 안 돌아. 축은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계절이 바뀌든 자리가 바뀌든, 도는 것 속에도 안 도는 게 하나씩은 있다는 뜻이야.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든, 자기 전에 창문 한 번 여는 습관이든. 지금이 뻑뻑하면 바퀴 전체를 억지로 되돌리려 하지 말고, 안 도는 축 하나부터 다시 꽂아두면 돼.

이럴 때 흔히 '휴가를 너무 길게 잡았나' 하고 후회하더라. 근데 그 후회는 겨눈 방향이 틀렸어. 생각해 보면 휴가란 일상의 리듬을 일부러 끊는 일이잖아. 실컷 끊어놓고 와서, 돌아오자마자 예전 박자가 안 잡힌다고 자책하는 건 좀 억울한 얘기야. 며칠쯤 헛도는 건 네가 망가진 게 아니라 리듬이 다시 맞물리는 중이라서 그래. 푹 쉬고 온 사람일수록 그 삐걱임이 더 클 수도 있고.

그러니 이번 주는 출력을 반쯤 줄인 채로 굴러가도 돼. 캐리어도 오늘은 한 칸만 풀고. 대신 저쪽에서 좋았던 것 딱 하나를 이쪽으로 데려와 보는 것도 방법이야. 거기서 마시던 그 커피든, 숙소에서 반복해 듣던 노래든. 저쪽 리듬을 통째로 그리워하는 것보다 한 조각을 이쪽에 옮겨두는 편이 바퀴엔 훨씬 쉽거든. 다만 이 가라앉음이 2주 넘게 이어지고 좋아하던 것까지 계속 시들하다면, 그건 의지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전문가와 한번 얘기해봐도 되는 일이야. 약해서가 아니라, 확인해볼 때가 된 것뿐이지.

속도는 천천히 올려도 돼. 얼마나 천천히 올릴지도 네가 정하는 거고. 바퀴는 재촉한다고 더 빨리 돌지 않더라 — 이건 고양이가 꽤 자신 있게 하는 말이야. 그 집 캐리어는 그날 밤에도 안 풀렸어. 근데 가방의 수하물 스티커는 떼어져 있더라. 한 칸씩이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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