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이의 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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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충동이 들 때

밤 열한 시 반, 사무실 건물 앞 화단 경계석에 별이가 앉아 있었어. 유리문이 열리고 마지막 퇴근자가 나오더라. 그 사람,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서서 목에 건 사원증을 벗었어. 그러고는 한참을 그냥 들고 서 있는 거야.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었거든. 별이는 그 손이 어디로 갈지 지켜봤지.

손은 어디로도 안 갔어. 사원증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가 풀었다가, 그러는 동안 등 뒤 건물 창들이 위층부터 하나씩 꺼지더라. 마지막 층 불이 꺼질 때까지 그 사람은 거기 서 있었어.

"다 그만두고 싶다." 그 마음은 예고 없이 훅 올라와. 상사의 말 한마디, 야근 끝의 텅 빈 거리, 뭐 하나가 방아쇠가 되면 전부 다 무너뜨리고 싶어지지. 사직서 양식을 검색해서 내려받아 두고는 열어보지도 않고, 메모장에 "그만두겠습니다" 다섯 글자를 썼다가 지우고, 화장실 칸에 오 분쯤 앉아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 돌아가고.

그 마음이 갈 데가 없다는 것도 별이는 알아. 사무실에선 티 내면 안 되고, 집에선 걱정 끼칠까 봐 못 꺼내고, 친구한테 하자니 또 그 얘기냐 할 것 같고. 그래서 이 말은 늘 혼잣말로만 살아. 별이가 굳이 이 시간에 여기 앉아 있는 것도 그래서야. 말할 데 없는 마음들은 대체로 밤 열한 시쯤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거든. 화단 경계석은 그런 마음들이 잠깐 앉았다 가는 자리고.

요즘 옆자리가 하나둘 비는 중이라면 흔들림은 더 잦아져. 누가 나가는 날은 남은 사람 마음도 같이 짐을 싸거든. 근데 그 사람이 나간 이유랑 네 이유가 같으리란 법은 없어. 같은 문으로 나가도 향하는 데는 다 다르더라.

이럴 때 주변 말은 늘 두 쪽으로 갈리더라. 참는 게 미련한 거라는 쪽이랑, 그래도 좀 더 버텨야 한다는 쪽. 근데 별이가 보기엔 두 말 다 정작 중요한 걸 안 물어봐. 그만둘지 말지 이전에, 이 마음이 지금 몇 번째냐는 것 말이야. 그걸 세어본 사람이 의외로 없어.

별이는 별꼬리를 한 번 반짝여 경계석 위에 카드 두 장을 비췄어. 탑 — 위에서 번개가 내리꽂히고 탑이 무너지는 그림. 무섭게 생겼지? 근데 시선을 아래까지 내려보면 얘기가 좀 달라져. 탑은 '무너지는 중'이고, 아직 안 무너진 토대가 밑에 남아 있어. 이 카드가 비추는 건 "회사를 부숴"가 아니야. 네 안에서 뭔가가 "이대로는 안 돼"라고 소리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소리가 다 지나간 뒤에도 남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야.

충동은 나쁜 게 아니라 신호야. 다만 신호에도 종류가 있어. 특정한 사람과 회의한 날 저녁에만 올라오는 건지, 요일과 상관없이 눈 뜨는 순간부터 있는 건지. 이 둘은 입 밖으로 나올 땐 똑같은 문장이지만 속은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 앞쪽이면 오늘 하루치의 화일 수도 있고, 뒤쪽이면 훨씬 오래된 목소리일 수도 있어. 어느 쪽인지는 별이가 못 정해. 세어본 사람만 알아.

그리고 펜타클 8이 옆에서 조용히 말해. 작업대 위엔 지금 만들고 있는 게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이미 끝낸 것들이 줄지어 있어. 작업장이 문을 닫는다고 그 완성품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네가 거기서 보낸 시간, 익힌 손놀림, 버텨낸 기록도 그렇게 이미 완성된 채로 남아. 그러니 그만두는 게 곧 전부 잃는 건 아니야. 반대로 계속 다니는 게 곧 제자리라는 뜻도 아니고.

오늘 밤은 사원증을 던지는 대신 딱 한 줄만 적어봐. 날짜, 그리고 그 마음이 올라온 순간. 그거면 충분해. 그렇게 몇 주가 모이면 남의 조언보다 훨씬 정확한 자료가 네 손에 생기거든. 그리고 마음이 너무 오래 무거우면 혼자 버티지 말고 곁의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기대도 돼. 던질지 말지는 그다음에 정해도 안 늦어 — 그건 언제나 네 몫이니까.

참, 그 사람은 사원증을 주머니에 넣고 갔어. 오늘은. 별이는 그걸 포기라고 보지 않아. 오늘 밤의 답이 "오늘은 아니다"였을 뿐이지. 내일은 내일의 선택이 또 있겠지.

일의 길목에서 한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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